토니 뱅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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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니 뱅크스는 영국의 음악가로, 1967년 결성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의 창립 멤버이자 키보디스트로 활동했다. 뱅크스는 제네시스에서 키보드 연주와 작곡에 참여했으며, 1970년대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앨범을 발매했다. 1978년 영화 음악 작곡을 시작하여, 여러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했고, 2004년에는 클래식 음악 앨범을 발표하며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다. 그는 서정적이고 웅장한 키보드 연주 스타일로 평가받으며, 제네시스 및 솔로 활동을 통해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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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뱅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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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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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앤서니 조지 뱅크스 |
출생일 | 1950년 3월 27일 |
출생지 |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주 이스트 호슬리 위드 할랜드 |
활동 기간 | 1967년 – 현재 |
웹사이트 | genesis-music.com |
음악 스타일 | |
장르 | 프로그레시브 록 클래식 음악 록 아트 록 팝 록 |
직업 |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
악기 | 건반 악기 |
레이블 | |
레이블 | 카리스마 레코드 폴리도르 레코드 버진 레코드 애틀랜틱 레코드 자이언트/리프라이즈 |
관련 활동 | |
관련 활동 | 제네시스 뱅크스테이트먼트 스트릭틀리 Inc 피쉬 |
주요 악기 | |
악기 | ARP 신디사이저 RMI 일렉트라 피아노 야마하 CP 시리즈 |
2. 초기 생애
앤서니 조지 뱅크스는 1950년 3월 27일, 영국 이스트 서섹스주 이스트 호슬리 위드 할랜드에서 5명의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4]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6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4] 8살 때부터 학교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부모님의 강요로 시작했기 때문에 즐기지 못했다.[5] 하지만,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모리스 라벨의 곡들을 귀로 듣고 암기하며 피아노에 대한 흥미를 키웠다.[4][8] 13살 때 맞지 않는 선생님을 만나 클래식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기도 했지만, 곧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 다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을 되찾고 음악가의 꿈을 꾸게 되었다.[5] 뱅크스는 피아노 외에도 기타를 독학으로 연주했다.
토니 뱅크스는 제네시스의 창립 멤버로서, 정교한 편곡과 키보드 솔로 연주를 통해 밴드의 사운드를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피르스 오브 피프스"의 피아노 전주, "더 시네마 쇼", "와처 오브 더 스카이즈", "서퍼스 레디"의 기악 파트 등이 그의 대표적인 연주로 꼽힌다.[8] 뱅크스는 키보드뿐만 아니라 "더 뮤지컬 박스", "엉탱글드" 등에서 앤서니 필립스, 스티브 해킷, 마이크 러더포드와 함께 12현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또한, 1970년 노래 "Shepherd"에서는 리드 보컬을 맡기도 했으며, 이 곡은 ''제네시스 아카이브 1967–75'' 박스 세트에 수록되어 있다.
7살 때, 뱅크스는 허스트 그린, 이스트 서섹스에 있는 기숙 학교인 보아젤 예비 학교에서 6년간 공부했다.[8] 1963년 9월, 차터하우스 학교에 진학하여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했다.[8] 그는 학교에서 피터 가브리엘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함께 학교 밴드인 가든 월에서 활동했다. 1967년 초, 마이크 러더포드, 앤서니 필립스와 함께 아논의 멤버들과 데모를 녹음했고, 이는 제네시스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뱅크스는 원래 서섹스 대학교에서 수학, 화학, 물리학, 철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다.[5] 하지만 1969년 제네시스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교를 중퇴했다.[6]
3. 경력
제네시스는 멤버 전원이 함께 곡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뱅크스는 때때로 혼자 완성된 곡을 가져오기도 했다. ''폭스트롯''(1972)의 "Time Table"이 그 시작이며, 뱅크스가 작곡한 "매니 투 매니", "애프터글로우"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애프터글로우"는 라이브 공연에서 오랫동안 연주되었다.
초창기 뱅크스는 피아노와 백 보컬만 담당했지만, ''트레스패스''(1970) 이후 해먼드 오르간, 멜로트론 등 다양한 키보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ARP Pro Soloist와 같은 신시사이저를 도입하면서 그의 음악적 가능성은 더욱 확장되었다.
1998년 제네시스 해체 이후, 뱅크스는 음악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작곡을 시작하면서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7]
1975년 피터 가브리엘의 제네시스 탈퇴 이후 솔로 활동을 시작한 뱅크스는, 1979년 첫 솔로 앨범 ''A Curious Feeling''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 뱅크스는 키보드 외에 기타와 베이스도 직접 연주하며 앨범을 "최대한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8] 1983년에는 ''The Fugitive''를 발매하며 모든 곡의 리드 보컬을 직접 소화했다.[8] 이후 뱅크스는 피쉬, 닉 커쇼 등 다양한 객원 보컬리스트를 참여시킨 솔로 앨범들을 발표했다.
1988년에는 뱅크스테이트먼트(Bankstatement)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팝/록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13] 1994년에는 두 번째 그룹 프로젝트 Strictly Inc.를 결성하여 활동했다.[13]
그의 솔로 앨범은 다음과 같다.앨범명 발매 연도 비고 A Curious Feeling 1979년 The Fugitive 1983년 Bankstatement 1989년 뱅크스테이트먼트 명의 Still 1991년 Strictly Inc 1995년 스트릭틀리 인크 명의 Seven: A Suite for Orchestra 2004년 Six Pieces for Orchestra 2012년 Five 2018년
뱅크스는 영화 음악 작곡에도 참여하여 ''더 샤우트(1978)'', ''위키드 레이디(1983)'', ''퀵실버(1986)'' 등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특히 ''퀵실버''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Shortcut to Somewhere"는 마릴리온의 보컬 피쉬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으며, 영국 싱글 차트 75위에 오르며 뱅크스의 솔로 경력에서 유일하게 차트에 오른 싱글이 되었다.[11]
2000년대 이후 뱅크스는 클래식 음악 작곡에 집중하여 ''세븐: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2004), ''식스 피시스 포 오케스트라''(2012), ''파이브''(2018) 등의 앨범을 발표했다. 구스타프 말러,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에릭 사티 등의 영향을 받은 그의 클래식 음악은 장 시벨리우스, 랄프 본 윌리엄스, 존 배리 등의 영향도 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12]
3. 1. 제네시스 (1967–2007)
뱅크스는 정교한 편곡과 키보드 솔로(예: "피르스 오브 피프스"의 피아노 전주, "더 시네마 쇼", "와처 오브 더 스카이즈", "서퍼스 레디"의 기악 파트)로 제네시스의 사운드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8] 키보드 연주 외에도 앤서니 필립스, 스티브 해킷, 마이크 러더포드와 함께 "더 뮤지컬 박스", "엉탱글드", "더 시네마 쇼", "서퍼스 레디"의 시작 부분 등에서 제네시스의 12현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기여했다. 가끔 백 보컬을 맡았으며, 1970년 노래 "Shepherd"의 일부를 리드 보컬로 불렀는데, 이 곡은 ''제네시스 아카이브 1967–75'' 박스 세트에만 수록되었다. 제네시스는 그룹으로 곡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뱅크스는 때때로 완성된 곡을 가지고 와서 다른 멤버들이 아무것도 추가하지 못하게 했는데, 이는 ''폭스트롯''(1972)의 "Time Table"부터 시작되었다. 뱅크스가 작곡한 제네시스 곡 중 주목할 만한 곡으로는 마이너 히트곡 "매니 투 매니"와 앤섬 발라드 "애프터글로우"가 있는데, 이 곡은 뱅크스가 주도하는 메들리의 인기 있는 코다로 남아 여러 해 동안 라이브 쇼에서 연주되었다.
초기에 뱅크스는 제네시스에서 피아노와 백 보컬만 담당했지만, ''트레스패스''(1970) 무렵에는 해먼드 오르간과 멜로트론까지 키보드 레퍼토리를 확장했다. 필립스에 따르면 뱅크스는 오르간에 적응하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었는데, 오르간을 "트릭 박스"라고 불렀다. 뱅크스는 해먼드 오르간과 멜로트론 모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다소 제한적이라고 생각했으며, ARP Pro Soloist와 같은 더 발전된 신시사이저를 (1973년 앨범 ''셀링 잉글랜드 바이 더 파운드''에서 처음 사용) 획득하면서 그에게 다양한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했다.
초대 리드 싱어 피터 가브리엘은 뱅크스와 제네시스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자주 다퉜던 멤버였다. 가브리엘은 "우리는 리허설에서 수동 공격적인 태도를 갖는 데 익숙했고, 토니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음악에 대해 종종 의견 충돌을 겪곤 했습니다. 그는 그때 훨씬 더 긴장했고, 스스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훌륭한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열정을 쏟았지만, 우리 둘 다 어색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성격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1997년 뱅크스는 스티브 해킷의 솔로 앨범 ''제네시스 리비지티드''에 참여하라는 초대를 거절했는데, 과거의 자료를 다시 살펴보는 것을 싫어했고 출연하면 제네시스가 곧 ''콜링 올 스테이션스''를 발매할 것이라는 사실에 혼란을 더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8][13]
1998년 제네시스가 해체된 후, 뱅크스의 경력은 침체되었고 그는 음악 은퇴를 고려했다. 이때 작곡을 시작했고, 초기 작품의 제목을 "Black Down"으로 정한 후 오케스트라 작곡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7]
프로그레시브 팝 노선이라는 제네시스의 음악성 변화 속에서 토니의 키보드 연주와 편곡은 항상 그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 긴 밴드의 역사 속에서 항상 무대 오른쪽에서 키보드 요새와 함께 자리를 잡고 화려한 퍼포먼스는 보여주지 않지만, 제네시스 사운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부 곡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3. 2. 솔로 활동 (1978–현재)
토니 뱅크스는 1975년 피터 가브리엘이 제네시스에서 탈퇴한 이후 솔로 앨범을 만들 생각을 처음 했다. 1979년 제네시스가 활동을 쉬는 동안, 뱅크스는 마이크 러더퍼드와 함께 스톡홀름의 폴라 스튜디오에서 첫 솔로 앨범을 녹음했다. 1979년 10월에 발매된 ''A Curious Feeling''은 원래 다니엘 키스의 소설 ''Flowers for Algernon''을 바탕으로 할 예정이었으나, 관련 뮤지컬이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에 아이디어를 보류했다.[8] 뱅크스는 키보드 외에도 기타와 베이스를 연주했는데, 이는 앨범을 "최대한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8] 스트링 드라이븐 씽의 킴 비컨이 보컬을 맡았다.[8]
1983년 6월, 뱅크스는 두 번째 앨범 ''The Fugitive''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는 뱅크스가 모든 곡의 리드 보컬을 직접 불렀다.[8] 이후 뱅크스는 피쉬, 닉 커쇼, 토야 윌콕스, 잭 휴스, 짐 다이아몬드 등 다양한 객원 보컬리스트를 솔로 앨범에 참여시켰다.
1988년, 뱅크스는 기타리스트이자 공동 프로듀서인 스티브 힐리지, 가수 알리스테어 고든, 제이니 클리멕 등이 참여한 팝/록 앨범을 뱅크스테이트먼트(Bankstatement)라는 그룹 이름으로 녹음했다. 이는 마이크 + 더 메카닉스로 성공을 거둔 러더퍼드를 보고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13] 동명의 앨범은 1989년에 발매되었고, 뱅크스는 "Big Man"의 리드 보컬을 맡았다.
1991년 4월, 피쉬와 닉 커쇼가 참여한 네 번째 앨범 ''Still''을 발매했다.[9] 이전과 달리 여러 명의 보컬리스트를 기용하여 각 트랙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택했다.[13] 뱅크스는 "Hero For an Hour"의 리드 보컬을 맡았다.
1994년, 뱅크스는 두 번째 그룹 프로젝트 Strictly Inc.를 결성했다. 원래 인코그니토(Incognito)라는 이름을 쓰려 했으나, 이미 같은 이름의 그룹이 있어 Strictly Inc.로 결정했다.[13] 왕 충의 보컬 잭 휴스가 참여했으며, 동명의 앨범은 1995년 9월 영국에서 발매되었다.
2004년, 클래식 앨범 ''Seven''을 녹음한 후 뱅크스는 록 솔로 앨범을 녹음하고 싶었지만, 계약이 어려워 독립/온라인 발매를 고려했다. 그는 "나는 어떤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설득할 필요가 없다. 비평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13]
그의 솔로 앨범은 다음과 같다:
앨범명 | 발매 연도 | 비고 |
---|---|---|
A Curious Feeling | 1979년 | |
The Fugitive | 1983년 | |
Bankstatement | 1989년 | 뱅크스테이트먼트 명의 |
Still | 1991년 | |
Strictly Inc | 1995년 | 스트릭틀리 인크 명의 |
Seven: A Suite for Orchestra | 2004년 | |
Six Pieces for Orchestra | 2012년 | |
Five | 2018년 |
3. 2. 1. 영화 음악
뱅크스는 루퍼트 하인의 요청으로 공포 영화 ''더 샤우트(1978)''의 음악을 작곡했다. 원래 데이비드 보위가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세션에 불참하면서 하인이 제네시스를 추천했다.[10] 뱅크스가 개발한 주요 테마는 이후 그의 솔로 앨범 ''A Curious Feeling''의 "From the Undertow"에 사용되었다.[10]그의 첫 주요 영화 음악은 마이클 위너 감독의 ''위키드 레이디(1983)''였다. 사운드트랙은 1983년 4월 애틀랜틱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다.
1983년경, 뱅크스는 피터 하이엄스 감독으로부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속편인 ''2010: 컨택트의 해(1984)''의 사운드트랙 작곡을 의뢰받았다. 하이엄스는 뱅크스의 ''더 샤우트'' 작업을 마음에 들어 했다.[10] 그러나 뱅크스가 작곡한 방대한 양의 음악은 하이엄스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결국 뱅크스는 프로젝트에서 하차했다.[10]
이후 뱅크스는 다른 SF 영화인 ''로르카와 아웃로(1984)''의 음악을 작곡하는 무보수 작업을 맡았다. 저예산으로 인해 전문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없었던 뱅크스는 자신의 16트랙 기계를 사용하여 음악을 작곡했다.[10]
그의 다음 사운드트랙은 드라마 영화 ''퀵실버(1986)''였다. 뱅크스는 감독들이 자신에게 더 지지적이었고 과정은 순조로웠지만, 히트 싱글 발매를 위해 사운드트랙에 더 직설적인 노래를 요구한 것은 싫어했다고 회상했다.[10] 마릴리온의 보컬 피쉬와 협업한 "Shortcut to Somewhere"는 영국 싱글 차트 75위에 오르며 뱅크스의 솔로 경력에서 유일하게 차트에 오른 싱글이 되었다.[11]
''로르카와 아웃로''와 ''퀵실버''를 위해 작곡된 음악의 일부는 뱅크스의 컴필레이션 앨범 ''사운드트랙(1986)''에 수록되었다.[10]
3. 2. 2. 클래식 음악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71년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보고 난 후였다.[12]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에릭 사티도 즐겨 듣는 작곡가로 꼽았다.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는 장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4번 A단조와 교향곡 7번 C장조, 랄프 본 윌리엄스의 교향곡 5번 D장조를 꼽았다.[12] 평론가들은 본 윌리엄스와 영화 음악 작곡가 존 배리가 그의 오케스트라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했다.[12]2004년 3월, 첫 클래식 음악 앨범 ''세븐: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을 낙소스 레코드에서 발매했다.[13]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마이크 딕슨이 지휘했다.[13]
2012년 3월 26일, 두 번째 클래식 앨범 ''식스 피시스 포 오케스트라''를 낙소스에서 발매했다.[14]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파울 잉글리시비가 지휘했으며, 수록곡은 다음과 같다.[14][15]
제목 | 참여 음악가 |
---|---|
"사이렌" | 알토 색소폰: 마틴 로버트슨 |
"스틸 워터스" | |
"블레이드" | 바이올린: 찰리 시엠 |
"와일드 필그리미지" | |
"오라클" | |
"시티 오브 골드" |
2018년 2월, 세 번째 클래식 음악 앨범 ''파이브''를 발매했다.[16] 체코 국립 교향악단과 합창단이 연주하고 닉 잉먼이 지휘했다. 뱅크스는 피아노와 첼레스타를 연주했다.
최근에는 오페라 테너 존 포터를 위한 음악과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16]
4. 음악 스타일
토니 뱅크스는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가장 세련된 키보디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17] 그의 연주는 곡에 헌신적이며, 편곡과 목적 의식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2] 클래식 록은 그를 제네시스 출신 솔로 아티스트 중 가장 과소평가된 인물로 묘사했다.[18]
그는 쇼스타코비치와 말러 같은 클래식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이는 제네시스에서 그의 솔로 파트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초기에는 공격적인 톤의 해먼드 오르간이나 탐미적인 피아노, 호너 피아넷에 의한 아르페지오가 두드러졌다. 스티브 해킷의 권유로 멜로트론을 도입한 이후에는 이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두꺼운 화음을 연주하는 스타일은 많은 후배 키보디스트에게 영향을 주었다.
1973년 앨범 《달 그림자 기사》부터 ARP 신시사이저를 도입했다. 그는 동시대 연주자들에 비해 부드러운 톤을 주로 사용했으며, 변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연주하는 속주를 자주 선보였다.
이후 폴리포닉 신시사이저나 샘플러, 야마하 CP-80, 디지털 신스 등을 시대에 맞춰 도입해 갔지만, 독특한 코드 진행과 편곡 센스는 일관되게 유지하며 자신과 제네시스의 음악성을 지켜나갔다.
그는 Linn LM-1 드럼 머신의 트리거 출력을 사용하여 ARP Quadra 신시사이저를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1983년 앨범 ''Genesis''의 "Mama"와 ''The Fugitive''(1983)의 "By You"에서 독특한 드럼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또한 1981년 앨범 ''Abacab''의 "Who Dunnit?"에서는 Sequential Circuits Prophet-5의 패치를 수동으로 전환하는 독특한 신시사이저 기술을 선보였다.
4. 1. 사용 악기
뱅크스의 초기 장비에는 해먼드 L-100 오르간, 호너 피아넷 N, 멜로트론 MkII가 포함되었으며, 이 모든 것(그랜드 피아노 포함)은 ''트레스패스'' 앨범에서 처음 들을 수 있다.[19] 뱅크스는 피아넷을 그랜드 피아노를 대신하는 악기로, 그리고 퍼즈 박스(펜더 블렌더와 유사한 수제)를 사용하여 리드 악기로 사용했다. 그는 "The Musical Box", "The Return of the Giant Hogweed", "Supper's Ready"와 같은 곡에서 스티브 해킷의 기타와 종종 대결했다. 1974년 뱅크스는 피아넷에서 RMI 368 일렉트라 피아노 및 하프시코드로 전환했는데, 이는 곧 제네시스 사운드에 통합되어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1974) 앨범의 다양한 부분에서 처음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종종 수제 퍼즈 박스와 MXR 페이즈 100으로 이펙팅되었으며, 나중에 이 페달들은 일렉트라 피아노의 패널에 삽입되었다.[19] 1978년에는 RMI가 야마하 CP-70 전기 그랜드 피아노로 교체되었다.[19]뱅크스가 사용한 최초의 신시사이저는 모노포닉 ARP Pro Soloist였는데, 뱅크스는 1973년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앨범을 위해 해먼드 T-102 및 멜로트론 M400과 함께 처음으로 이를 구입하여 해먼드 L122와 멜로트론 MkII를 대체했다.[19] 1976년 ''Trick of the Tail'' 앨범 발매 이후 뱅크스는 세미 모듈형 신시사이저인 ARP 2600을 사용했다.[20] 1978년 ''...And Then There Were Three...''에서 Polymoog (최초의 폴리포닉 신시사이저 중 하나)가 뱅크스의 광범위한 배열에 통합되어 그의 독특한 MXR 페이즈 100 및 Boss CE-1 코러스 이펙트 페달을 해먼드 T-102 오르간에 사용하여 더욱 표현력이 풍부하고 다층적인 "다채로운" 질감을 가능하게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라이브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주로 멜로트론을 대체하기 위해 Roland RS-202 스트링 및 브라스 신시사이저를 추가했다. 그는 또한 펜더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를 잠시 사용했다. 그는 또한 야마하 CP-70 전기 그랜드 피아노를 구입했는데, 이를 보스 코러스를 통해 연주하면 뱅크스의 1970년대 - 80년대 사운드의 특징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는 1980년 ''Duke''까지 이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때 그는 ARP 2600, ARP Pro-Soloist, 멜로트론, RS-202를 버리고 Yamaha CS-80, Sequential Circuits Prophet-5, ARP Quadra 및 Roland VP-330을 사용했다. 1981년 ''Abacab''에서는 오르간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고, 오르간 사운드는 보스 CE-1을 통해 Sequential Circuits Prophet 10 신시사이저를 사용하여 에뮬레이션되었다. 1983년 앨범 ''Genesis''에서 그는 Polymoog를 E-mu Emulator 디지털 샘플러로 교체했다. 그는 또한 "Home by the Sea"와 같은 뱅크스의 경력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가진 NED Synclavier II를 추가했다. 이 장비의 마지막 변경 사항은 E-mu Emulator를 E-mu Emulator II+로, Roland VP-330을 Yamaha DX7로 교체하여 ''Invisible Touch''를 제작한 것이다. ''We Can't Dance''(1991) 앨범 이후 뱅크스는 Roland 및 Korg 신시사이저, 예를 들어 Roland JD-800 및 Korg Wavestation을 선호해 왔다.
샘플링을 통해 그는 이전 사운드의 많은 부분을 에뮬레이션하기 위해 랙 마운트된 신스 모듈 어레이가 있는 4개 또는 3개의 키보드로 구성된 더 작은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When in Rome 2007'' 이후 그의 콘서트 장비에는 랙 마운트된 Korg Wavestation SR, Roland JD-990, Yamaha TX7, E-mu Proteus I 및 II, E-mu EIV, 그리고 마스터 키보드로 Korg OASYS를 위한 MIDI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Korg Wavestation과 Roland A-90 키보드가 포함된다.[21]
데뷔 초에는 공격적인 톤의 해먼드 오르간이나 탐미적인 피아노, 호너 피아넷에 의한 아르페지오가 눈에 띈다. 스티브 해킷의 권유로 멜로트론을 도입한 이후에는 이를 다용하게 되었다.
1973년 앨범 『달 그림자 기사』부터 ARP 신시사이저를 도입했다. 동시대 연주자에 비해 부드러운 톤을 다용하고, 변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연주하는 속주를 자주 선보였다. 이 중기 제네시스 (해킷 탈퇴까지)의 무대에서 세팅된 해먼드 오르간 (레스리가 아닌 페이저를 사용하여 감싸는 듯한 사운드로 만들었다), RMI 일렉트라 피아노, ARP 프로솔로이스트, 멜로트론 M400은 토니를 가장 상징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후 폴리포닉 신시사이저나 샘플러, 야마하 CP-80, 디지털 신스 등을 시대에 맞춰 도입해 갔지만, 독특한 코드 진행과 편곡 센스는 일관되어 있으며, 그 자신과 제네시스의 음악성을 유지해 갔다.
5. 평가
뱅크스는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가장 세련된 키보디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1] 과장되지 않은 연주와 곡에 대한 헌신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2]
정교한 편곡과 "피르스 오브 피프스"의 피아노 전주, "더 시네마 쇼", "와처 오브 더 스카이즈", "서퍼스 레디"의 기악 파트와 같은 키보드 솔로는 제네시스의 사운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뱅크스는 키보드 연주 외에도 앤서니 필립스, 스티브 해킷, 마이크 러더포드와 함께 "더 뮤지컬 박스", "엉탱글드", "더 시네마 쇼", "서퍼스 레디"의 시작 부분 등에서 제네시스의 12현 어쿠스틱 연주에 기여했다. 또한, 1970년 노래 "Shepherd"의 일부를 리드 보컬로 불렀으며, 이 곡은 ''제네시스 아카이브 1967–75'' 박스 세트에만 수록되었다.
제네시스는 그룹으로 곡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뱅크스는 때때로 완성된 곡을 가져와 다른 멤버들이 추가할 부분을 남기지 않기도 했다. ''폭스트롯''(1972)의 "Time Table"이 그 예시이다.[3] 뱅크스가 작곡한 제네시스 곡 중 주목할 만한 곡으로는 마이너 히트곡 "매니 투 매니"와 앤섬 발라드 "애프터글로우"가 있으며, "애프터글로우"는 여러 해 동안 라이브 쇼에서 연주된 인기곡이다.
초기에는 피아노와 백 보컬만 담당했지만, ''트레스패스''(1970) 무렵 해먼드 오르간과 멜로트론을 추가했다. ARP Pro Soloist와 같은 신시사이저를 획득하면서 더 다양한 가능성이 열렸다.[4]
피터 가브리엘은 뱅크스를 제네시스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자주 다퉜던 멤버로 회상했다. 가브리엘은 리허설에서 수동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음악에 대한 의견 충돌이 잦았다고 말했다.[5]
프로그레시브 팝 노선이라는 제네시스의 음악성 변화 속에서도 뱅크스의 키보드 연주와 편곡은 항상 핵심을 담당했다. 그는 무대 오른쪽에서 키보드 요새와 함께 자리를 잡고 화려한 퍼포먼스는 보여주지 않지만, 제네시스 사운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네시스 외에도 솔로 활동, 영화 사운드트랙 제작, 뱅크스테이트먼트, 스트릭틀리 인크와 같은 그룹 활동도 했다.
6. 사생활
뱅크스는 1972년 7월 29일 마가렛 맥베인과 결혼했다.[7] 제네시스의 앨범 《폭스트롯》작업으로 뱅크스가 너무 바빠서, 이들은 단 하루 동안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뱅크스는 "밴드는 나를 불쌍하게 여겨서 다음 투어에 그녀를 데려오는 비용을 지불했다"고 말했다.[7] 이 부부는 두 자녀를 두었다.[22]
7. 음반 목록
토니 뱅크스는 제네시스의 멤버이자 솔로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음반을 발매했다.
제네시스에서는 정교한 편곡과 키보드 솔로 (피르스 오브 피프스의 피아노 전주, 더 시네마 쇼, 와처 오브 더 스카이즈, 서퍼스 레디의 기악 파트 등)를 통해 밴드의 사운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앤서니 필립스, 스티브 해킷, 마이크 러더포드와 함께 더 뮤지컬 박스, 엉탱글드 등에서 12현 어쿠스틱 연주를 하거나 백 보컬을 맡기도 했다.[4] 매니 투 매니, 애프터글로우와 같은 곡들을 작곡하여 제네시스의 음악적 색깔을 더했다.
솔로 앨범에서는 피쉬, 닉 커쇼 등 여러 객원 보컬리스트를 기용했다. 특히, ''The Fugitive''(1983)에서는 모든 곡의 리드 보컬을 직접 맡기도 했다.[8] 뱅크스테이트먼트(Bankstatement), 스트릭틀리 Inc. (Strictly Inc.)와 같은 그룹 명의로도 앨범을 발매했다.
다음은 토니 뱅크스의 스튜디오 앨범 목록이다.
연도 | 앨범 제목 |
---|---|
1979 | A Curious Feeling |
1983 | The Fugitive |
1989 | Bankstatement (뱅크스테이트먼트 명의) |
1991 | Still |
1995 | Strictly Inc (스트릭틀리 Inc. 명의) |
2004 | Seven: A Suite for Orchestra |
2012 | Six Pieces for Orchestra |
2018 | Five |
이 외에도 사운드트랙 앨범(''The Wicked Lady''(1983), ''Soundtracks''(1986))과 컴필레이션 앨범(''A Chord Too Far''(2015), ''Banks Vaults: The Albums 1979–1995''(2019), ''18 Pieces for Orchestra''(2024))을 발매했다.
7. 1. 제네시스
뱅크스의 정교한 편곡과 키보드 솔로(피르스 오브 피프스의 피아노 전주, 더 시네마 쇼, 와처 오브 더 스카이즈, 서퍼스 레디의 기악 파트 등)는 제네시스의 사운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뱅크스는 키보드 연주 외에도 앤서니 필립스, 스티브 해킷, 마이크 러더포드와 함께 더 뮤지컬 박스, 엉탱글드, "더 시네마 쇼", "서퍼스 레디"의 시작 부분 등에서 제네시스의 12현 어쿠스틱 연주에 기여했다. 또한 가끔 백 보컬을 맡았으며, 1970년 노래[4] 중 "Shepherd"의 일부를 리드 보컬로 불렀는데, 이 곡은 ''제네시스 아카이브 1967–75'' 박스 세트에만 수록되었다. 제네시스는 그룹으로 곡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뱅크스는 때때로 완성된 곡을 가지고 와서 다른 멤버들이 아무것도 추가하지 못하게 했는데, 이는 ''폭스트롯''(1972)의 "Time Table"부터 시작되었다.[5] 뱅크스가 작곡한 제네시스 곡 중 주목할 만한 곡으로는 마이너 히트곡 매니 투 매니와 앤섬 발라드 애프터글로우가 있는데, 이 곡은 뱅크스가 주도하는 메들리의 인기있는 코다로 남아 여러 해 동안 라이브 쇼에서 연주되었다.
초기에 뱅크스는 제네시스에서 피아노와 백 보컬만 담당했지만, ''트레스패스''(1970) 무렵에는 키보드 레퍼토리를 해먼드 오르간과 멜로트론까지 확장했다. 필립스에 따르면 뱅크스는 오르간에 적응하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었는데, 오르간을 "트릭 박스"라고 불렀다.[6] 뱅크스는 해먼드 오르간과 멜로트론 모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다소 제한적이라고 생각했으며, ARP Pro Soloist와 같은 더 발전된 신시사이저를 (1973년 앨범 ''셀링 잉글랜드 바이 더 파운드''에서 처음 사용) 획득하면서 그에게 다양한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했다.[7]
초대 리드 싱어 피터 가브리엘은 뱅크스의 제네시스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자주 다퉜던 멤버였다. 가브리엘은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리허설에서 수동 공격적인 태도를 갖는 데 익숙했고, 토니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음악에 대해 종종 의견 충돌을 겪곤 했습니다. 그는 그때 훨씬 더 긴장했고, 스스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훌륭한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열정을 쏟았지만, 우리 둘 다 어색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성격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8]
1997년 뱅크스는 스티브 해킷의 솔로 앨범 ''제네시스 리비지티드''에 참여하라는 초대를 거절했는데, 과거의 자료를 다시 살펴보는 것을 싫어했고 출연하면 제네시스가 곧 ''콜링 올 스테이션스''를 발매할 것이라는 사실에 혼란을 더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9][10]
1998년 제네시스가 해체된 후, 뱅크스의 경력은 침체되었고 그는 음악 은퇴를 고려했다. 이때 그는 작곡을 시작했고, 초기 작품의 제목을 "Black Down"으로 정한 후 오케스트라 작곡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11]
프로그레시브 팝 노선이라는 제네시스의 음악성 변화 속에서 토니의 키보드 연주와 편곡은 항상 그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 긴 밴드의 역사 속에서 항상 무대 오른쪽에서 키보드 요새와 함께 자리를 잡고 화려한 퍼포먼스는 보여주지 않지만, 제네시스 사운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부 곡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2004년에는 클래식 레이블인 낙소스에서 이전부터 구상해왔던 오케스트라 모음곡 "세븐"을 발매했다.
라이브에서는 거의 포커 페이스로 묵묵히 연주를 해내지만, 1976년 콘서트에서는 드물게 기뻐하며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또한, 마릴리온의 피시와의 공동 작품 "Shortcut to Somewhere" 등 일부 뮤직 비디오에서는 평소 팬들 앞에서 보여주지 않는 익살스러운 모습을 선보였다.
7. 2. 솔로 앨범
토니 뱅크스는 1975년 피터 가브리엘이 제네시스를 떠난 후 솔로 앨범을 만들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Mad Man Moon"과 "Entangled", "Ripples"의 일부를 포함하여 가브리엘 없이 녹음된 첫 앨범인 ''A Trick of the Tail''(1976)에 사용된 곡들을 만들고 있었다.[13] 뱅크스는 자신의 솔로 앨범에 피쉬, 닉 커쇼, 토야 윌콕스, 잭 휴스, 짐 다이아몬드 등 여러 객원 보컬리스트를 기용했다.7. 2. 1. 스튜디오 앨범
토니 뱅크스는 다음과 같은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다.연도 | 앨범 제목 |
---|---|
1979 | A Curious Feeling |
1983 | The Fugitive |
1989 | Bankstatement (뱅크스테이트먼트 명의) |
1991 | Still |
1995 | Strictly Inc (스트릭틀리 Inc. 명의) |
2004 | Seven: A Suite for Orchestra |
2012 | Six Pieces for Orchestra |
2018 | Five |
1979년, 제네시스가 활동을 쉬는 동안 뱅크스는 폴라 스튜디오에서 첫 번째 스튜디오 앨범 ''A Curious Feeling''을 녹음했다. 원래 다니엘 키스의 소설 ''Flowers for Algernon''을 바탕으로 할 예정이었으나, 이 책에 관한 뮤지컬이 곧 나올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계획을 보류했다.[8]
1983년 6월, 뱅크스는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Fugitive''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그가 모든 곡의 리드 보컬을 맡은 유일한 앨범이다.[8]
1988년, 뱅크스는 뱅크스테이트먼트라는 그룹 이름으로 팝과 록 스타일의 앨범을 녹음했다. 마이크 + 더 메카닉스의 성공을 본 뱅크스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영감을 받았다.[13] 이들의 동명 앨범 Bankstatement은 1989년에 발매되었다.
1991년 4월, 뱅크스는 피쉬와 닉 커쇼가 참여한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Still''을 발매했다.[9] 이전 앨범과 달리, 그는 이 앨범에 더 많은 보컬리스트를 선택했다.[13]
1994년, 뱅크스는 스트릭틀리 Inc.라는 두 번째 그룹 프로젝트를 결성했다. 왕 충의 보컬리스트 잭 휴스와 함께 했으며, 이들의 동명 앨범 Strictly Inc는 1995년 9월 영국에서 발매되었다.
2004년, 클래식 앨범 ''Seven''을 녹음한 후 뱅크스는 또 다른 록 솔로 앨범을 녹음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지만, 계약을 맺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판단했다.[13]
7. 2. 2. 사운드트랙 앨범
- ''The Wicked Lady'' (1983)
- ''Soundtracks'' (1986)
7. 2. 3. 컴필레이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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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ェネシス独自のサウンドを確立した黄金期のメンバーによるアルバム『怪奇骨董音楽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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